상담을 마치고 웃으며 나오는 나를 보고 와이프가 물었다.
"그렇게 통쾌해?"
"응, 엄청나게 통쾌해"
이번 기회에 이론적(?)으로 사람에 대한 공부도 많이 된 것 같다. 나르시시스트를 듣기만했지 "아, 이게 나르시시스트구나" 라고 느낀 것도 처음, 그 사실을 알고 대응한 것도 처음이었다.
와이프와 저녁에 맥주한잔하고 푹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나는 출근하고, 와이프는 둘째 신아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었다. 혼자 육아를 하고 있는 와이프에게 이번 사건은 정말 큰 짐이었다. 어제 상담에서 우리는 유치원과 정말 자세히 커뮤니케이션을 했으니까 이제 유치원과 함께 신아가 더 말을 잘 내뱉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되는 것이었다. 와이프는 이제 A선생님과 신경전? 말싸움?을 벌일 일도 없으니 마음의 짐을 홀가분하게 덜어냈다.
그러나 문제는 와이프가 둘째를 하원시킬 때 일어났다. 신아는 병원에 갈 필요 없다고 직접 이야기해 준 C선생님이 와이프에게 자기는 A선생님과 의견이 같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와이프는 다시 한번 억장이 무너졌다. 몇 일 전만해도 다른 말을 했던 C선생님 마저도 우리가 상담 한 후 갑자기 의견이 달라졌다. C선생님은 유치원에 출근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신아와 가까이 지내는 선생님이었기에 와이프도 많이 혼란스러워했다. 우리가 C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었으니, 다시 이것을 약점으로 잡아 A가 C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하라고 언지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고.
와이프는 기여코 참아왔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이 불편한 상황이 여전히 계속된다는 답답함, C선생님에 대한 실망, 육아에 대한 부담감까지 모든게 한꺼번에 와이프를 누르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펑펑 우는 와이프는 나도 낯설정도였으니 와이프를 누르고 있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던걸까. 얼마나 울었는지 와이프의 눈은 이틀동안 붓기가 가라앉지 않아 개구리 왕눈이가 되어 돌아다녔다.
일단 와이프를 A와 최대한 만나지 못하도록 이제는 내가 아침마다 신아를 데려다주기로 했다. 와이프는 F라서 감정을 건드리면 너무 힘들어한다. 그나마 T인 내가 나서는 게 낫다. 만약 하원할 때, A가 뭔가를 말한다면 와이프에게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그냥 "응, 알았어" 정도로 대꾸하라고도 당부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신아를 데리고 유치원에 간 나는 A와 만났다. 나를 본 A는 다짜고짜 "Hallo" 인사를 하고, 곧바로 자기방어적인 이야기를 했다.
"내가 C선생님한테 물어봤는데, C선생님은 신아가 병원에 안가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는데? 가야된다고 말했데"
아무튼 이년의 목적은 너무나도 뻔해서 눈에 보일 정도다. 그러니까 우리가 잘못 들었다는거다. 또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인 남탓으로 돌리는 게 여기서 나왔다. 독일생활 7년찬데 그 정도도 못알아들을까봐. 개수작 부리고 있네.
"응, 알았어. 와이프한테 들었어."
그리고는 대화를 끝냈다. 여기에 대고 또 "아니다. 그러지 않았다." 라고 하면 맞네 틀리네하면서 또 감정이 올라오고... 그렇게 되면 이 년이 원하는 상황이 된다. 정신과 선생님께 배운대로 감정없는 회색돌 기법으로 "응, 알았어."하고 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이후부터 우리는 "응. 알았어"로 대응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감정을 긁기 위해 더 심한 말을 할 수 있고, 아니면 우리가 아닌 다른 먹잇감을 찾으러 갈 수도 있다.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다행히 와이프는 이 힘든 시기를 혼자서 보내지 않았다. 유치원의 다른 엄마들과 적극적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더욱 친해진 계기가 되었다. 와이프는 우리 주변에 참 좋은 사람이 많다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또 한번 성장하는 시기였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첫째 신우의 절친, 헨리 엄마 사라는 와이프에게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 걔가 잘못한거야." 단호하게 말해주면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자세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또 하나! 다른 엄마들도 이 선생을 유별나게 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도 이 여자가 아이들한테 나쁜 맘을 먹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 (설명하기 어려운데) 단지 본능적으로 나르시시시즘 성향이 부모 상담에서 나오고, 그 때 남의 단점을 꼬집으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인 것이다. 이게 참 어려운게... 이 모든 행동이 그녀가 계획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본능처럼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나와서 본인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본인 스스로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르고 살 가능성이 매우 클 것이다. 에휴.
참... 타지에서 산다는 게 매 순간 도전의 연속이고, 그 안에서 또 많은 걸 배우는 것 같다. 4편이나 되는 이 이야기도 우리가족에게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매번 좋은 일, 기쁜 일이 생길때만 글을 쓸 수도 있지만, 이런 불편한 일도 있는 게 인생 이고 진짜 해외생활을 기록하는 블로거의 마음가짐 아니겠나. 신아가 좀 크면 나중에 웃으며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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