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우리 회사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두고 격렬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건축도, 토목도 아닌 애매한 그것. 본디 땅 위는 건축, 땅 아래는 토목이라 배웠건만, 이건 도무지 어디에 끼워넣어야 할지 모를 정체불명의 존재였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장벽 설계. 거대한 공장지대와 맞닿은 주거지를 소음으로부터 보호해야 했고, 결국 소음방지법에 따라 Lärmschutzwand (차음벽)을 설계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 스케일이었다. 높이 10미터, 길이 350미터. 진격의 거인도 고개를 끄덕일 법한, 거대한 벽.
이걸 건축에서 맡아야 하느냐를 두고 이견이 많았지만, 우리 최대 고객인 메르세데스는 단호했다.
“건축팀이 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는 당시 최고직급자(건축 전공 아님)가 당당히 프로젝트를 들고 왔다.
"이거 건축 아닌데?"
"그치만 고객이 원하잖아."
그래서 토론은 길지 않았다. 현실을 되돌릴 수는 없었고, 다음 질문은 이거였다.
"그럼 어느 팀이 할래?"
하필이면, 나는 그 장벽 앞 건물을 열심히 뜯어고치는 설계를 하는 중이었다.
“이 구역에서 여길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렇게, 또 하나의 괴이한 프로젝트가 우리 팀에 귀속(?)되었다.
이 벽 하나를 세우는 데도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기초 아래로는 수도, 전기, 오수 등 수많은 Leitungen이 지나가고 있었기에, 벽의 기초 설계는 퍼즐 맞추기 같았다. 곡선이니 사선이니, 처음엔 디자이너의 혼이 담긴 벽체 안도 나왔지만, 예산 앞에서 예술은 늘 무릎을 꿇는다. 결국엔 수직의 직선 벽으로 귀결. 현실은 계획안을 조용히 덮는다.
이 프로젝트를 하며, 건축 도면보다 TGA 도면(기계, 설비, 전기)을 더 많이 들여다봤고,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 공부도 꽤 됐다. 처음엔 그저 그런 일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제법 성장하게 한 프로젝트였다. 잘 마무리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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